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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종이 아관파천 때 러시아에 준 선물, 127년만에 공개

by 청 산 (靑山) 2023. 2. 8.

1896년 대한제국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황제 2세 대관식에 전달한 ‘흑칠나전이층농’, 장승업의 고사인물도, ‘백동향로’ 등 외교선물이 오는 9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 특별전 개막식을 통해 127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.

장승업의 고사인물도 중 취태백도

‘흑칠나전이층농’은 2020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‘국외소재문화재 보존․복원 및 활용지원 사업’을 통해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에 복원예산을 지원함으로써, 이번에 함께 공개될 수 있었다.

크렘린박물관이 이번 전시(전시명 : 한국과 무기고,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)에 출품한 유물들은 아관파천(1896.2~1897.2) 당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황제 2세 대관식(1896.5.26)을 맞아 민영환(1861~1905)을 전권공사로 파견해 전달한 ‘외교선물’ 가운데 일부다.

고종이 전달한 선물들은 민영환을 수행해 대관식에 함께 참석했던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그 목록의 일부가 언급된 바는 있었지만, 구체적인 실물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.

이번 특별전 전시과정에서 1896년 고종이 전달한 선물은 총 17점으로 확인되었다. 하지만 이번에 특별전 출품작은 흑칠나전이층농 1점,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2점, 백동향로 2점 등 총 5점이며, 이는 모두 크렘린박물관 소장품들이다. 발(簾), 등에석(登每席) 등 나머지 선물들은 현재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에 소장돼 있다.

전문가들은 “이 127년전 외교선물이 19세기 수준 높은 조선 공예 및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 유물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.

백동향로

백동향로의 경우, 사각과 원형의 기형은 ‘하늘과 땅’을 상징하는 천 원 지방(天圓地方)을 의미하는 것으로 황제의 치세를 표상하는 대관식의 취지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된다. 특히 길상 문자를 기준으로 직선과 유려한 곡선을 조화롭게 융합하여 정교하게 투조한 문양의 구조는 일반적인 공예품에서 보기 힘든 복잡하고 세밀한 얼개를 보여주고 있다. 사각향로 노신에 ‘향연(香煙 : 향기로운 연기가 서리다)’, 둥근 향로 노신에 ‘진수영보(眞壽永寶 : 참다움과 장수, 영원한 보물)’를 각각 새겨 대관식을 축원했다.

흑칠나전이층농

흑칠나전이층농의 경우, 고종의 특명에 의해 당대에 가장 뛰어난 나전 장인이 제작한 작품으로 추정되어 더욱 주목할 만하다. 농 하단부에 나전 십장생(十長生)을 부착해 황제로 즉위하는 니콜라이2세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다.

또한 장승업 고사인물도의 경우, 크렘린박물관 소장품 4점이 처음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2점이 이번에 공개되는 것이다. 조선의 4대 화가로 꼽히는 장승업(1843~1897)의 이번 작품들은 지금껏 학계에 보고된 바가 없는 것으로, 크기만 174cm가 넘는 보기 드문 대작에 속한다고 평가되고 있다. 특히 장승업의 각 작품에는 ‘朝鮮(조선)’이라는 국호를 ‘吾園 張承業(오원 장승업)’ 서명 앞에 붙였다. 이는 장승업 작품 가운데 처음 확인되는 희귀 사례로, 이 작품이 ‘외교선물’을 전제로 창작되었음을 잘 보여준다.

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의 ‘무기고 박물관’은 1508년 러시아 황실 무기고로 조성되어 ‘무기, 황실보석 등’의 수장고로 사용.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 이전 후 박물관으로 조성(1806), 1813년 일반에 개방됨. 1960년 크렘린박물관으로 공식 편입되었다.

abc@heraldcorp.com

ⓒ 헤럴드경제 함영훈 기자